해외에서는 삼겹살을 정말 안 먹을까요?: 진짜 의외의 진실
여러분에게 ‘소울푸드(Soul Food)’는 무엇인가요? 이 단어는 원래 미국 남부 흑인들의 고된 삶과 애환이 담긴 음식을 뜻했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영혼을 달래주는 추억의 음식’이라는 의미로 더 자주 쓰이곤 하죠. 한국인에게 소울푸드를 묻는다면, 많은 사람이 '삼겹살’을 떠올릴 겁니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고기, 동료들과 잔을 부딪치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회식 자리,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외식까지. 삼겹살은 우리 삶 곳곳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겹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삼겹살은 원래 서양에서는 기름이 많아서 버리는 부위인데, 우리나라만 비싸게 사 와서 먹는다"는 것이죠. 정말 그럴까요? 이토록 맛있는 삼겹살을 외국 사람들은 정말 먹지 않는 걸까요? 오늘은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삼겹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삼겹살의 시작
지금은 '금겹살’이라 불릴 만큼 귀한 대접을 받지만, 사실 삼겹살이 처음부터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삼겹살의 시작은 조금 초라했습니다.
과거 일본은 돈가스의 재료인 등심과 안심을 주로 수입했는데, 주요 수입국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 또 다른 주요 수입국이었던 대만에서 구제역(foot-and-mouth disease)이 발생하면서 대만산 돼지고기 수입이 금지됩니다. 이 덕분에 한국산 등심과 안심은 일본으로 더 많이 수출되었죠.
자연스럽게 국내에는 등심과 안심을 제외한 다른 부위, 특히 기름기가 많은 돼지 뱃살(삼겹살)이 많이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부위별로 고기를 즐기는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단백질과 지방에 대한 구분도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삼겹살을 처리하기 위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저렴한 가격 덕분에 탄광이나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 시장 상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때마침 보급되기 시작한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삼겹살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주었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삼겹살구이는 서민들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이자 회식 메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삼겹살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서양에서는 삼겹살을 버린다"는 말은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 요리, 특히 돼지고기 문화권에서는 '코부터 꼬리까지(Nose to Tail)'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돼지의 모든 부위를 버리지 않고 식재료로 활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껍데기, 피, 내장, 뼈 등 우리가 '부속물’이라 부르는 부위를 이용한 요리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코파 디 테스타(Coppa di Testa)'는 돼지머리를 눌러 만든 요리로, 우리의 돼지머리 편육과 아주 비슷합니다. 돼지 족으로 만든 소시지 ‘잠포네(Zampone)’ 역시 우리의 족발을 떠올리게 하죠. 이처럼 우리가 먹는 부위를 다른 나라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먹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생삼겹살을 얇게 썰어 불에 바로 구워 먹는 것을 선호하지만, 서양에서는 주로 염장(소금에 절임)하거나 훈제하는 등 가공을 거쳐 먹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베이컨(Bacon)'입니다. 베이컨은 삼겹살을 소금에 절여 훈제한 것으로,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탄생한 조리법이죠. 이탈리아에서는 소금에 절인 삼겹살을 '판체타(Pancetta)'라고 부르는데, 얇게 썰어 빵과 함께 먹기도 하고, 여러 요리에 감칠맛을 더하는 조미료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결국 삼겹살은 버려지는 부위가 아니라, 각기 다른 문화와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 세계 돼지고기 시장을 움직이는 한국
한국인의 유별난 삼겹살 사랑은 전 세계 돼지고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약 100만 마리였던 국내 돼지 사육 두수는 2000년대에 들어 1,000만 마리로 10배나 늘어났지만, 폭발적인 삼겹살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해외에서 삼겹살을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칠레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이 한국 시장을 위해 기존의 생산 방식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 칠레: 원래 칠레에서는 돼지 옆구리에서 바깥 지방층을 도려내고 남은 살코기만 갈비살로 유통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주문에 따라 지방층을 걷어내지 않고 통째로 포장해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공들여 지방을 제거할 필요도 없고, 무게도 더 나가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죠. 현재 칠레 돼지고기 수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5%에 달하며, 삼겹살과 목살은 거의 전부 한국으로 수출된다고 합니다.
- 스페인: 스페인 역시 내수용으로는 '토스티아(Tostilla)'라 부르는 갈비살을 주로 소비합니다. 하지만 한국 수출용으로는 옆구리 지방을 그대로 남겨두고, 갈비뼈만 제거해 고기를 더 두툼하게 만들어 보냅니다. 돈을 더 주고 사 가니,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서라도 뼈를 제거해주는 것이죠.
이처럼 세계 각국은 ‘뱃살을 먹는 동방의 이상한 나라’ 한국 덕분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큰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이제 "외국에서 삼겹살은 싸다"는 말도 옛말이 되었습니다.
삼겹살, 왜 이렇게 맛있을까?
삼겹살이 맛있는 이유는 바로 ‘지방’ 때문입니다. "주방의 화학자"로 불리는 해롤드 맥기(Harold McGee)에 따르면, 우리가 인지하는 고기 맛은 사실 살코기가 아닌 지방에 축적된 맛 분자들 덕분이라고 합니다. 지방은 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할 뿐만 아니라,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를 더해줍니다. 마블링이 촘촘하게 박힌 소고기가 비싼 이유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물론, 삼겹살을 구울 때 나오는 벤조피렌(Benzopyrene)과 같은 발암물질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고기를 태웠을 때 발생하는 문제로, 타지 않게 잘 구워 먹고 환기를 잘 시킨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탐욕이 만든 ‘검은 삼겹살’
한국인의 뜨거운 삼겹살 사랑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합니다. 국내 돼지고기 업계는 오로지 더 많은 삼겹살을 생산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했습니다.
- 품종 개량: 삼겹살 양을 늘리기 위해 허리가 유난히 길고 늑골이 한두 개 더 많은 특정 품종의 돼지를 대거 수입했습니다.
- 고열량 사료: 복부 지방이 잔뜩 끼도록 일부러 동물성 지방인 우지(牛脂) 등을 섞은 고열량 사료를 먹였습니다.
- 성장 촉진: 어린 나이에 거세를 하고, 성장촉진제를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대량 밀식 사육은 '저지방, 저칼로리’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축산 트렌드에 역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한 탐욕스러운 돈벌이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검은 삼겹살’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삼겹살,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결론적으로, "삼겹살은 한국에서만 먹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삼겹살, 즉 돼지 뱃살 자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베이컨, 판체타 등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고기를 불판에 직접 구워 쌈 채소와 함께 먹는 독특한 방식은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즐겨왔던 삼겹살 한 점에는 가난했던 시절의 서민적인 역사부터, 전 세계 돼지고기 시장을 움직이는 경제적인 영향력, 그리고 과도한 이윤 추구가 낳은 어두운 단면까지,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저녁, 삼겹살을 앞에 두고 있다면 이 이야기들을 한번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이 음식이 걸어온 길을 이해하고 먹는다면, 그 맛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