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치즈의 역사, 그 시작엔 지정환 신부가 있었다

임실치즈의 역사, 그 시작엔 지정환 신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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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치즈의 역사, 그 시작엔 지정환 신부가 있었다

전라북도 임실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치즈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치즈가 생소했던 1960년대에 어떻게 임실이 치즈의 고장이 되었을까요?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중심에는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Didier Serstevens)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임실치즈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한 외국인 신부의 헌신이 어떻게 한국 치즈 산업의 토대가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임실치즈의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 치즈 문화의 뿌리를 발견해보세요.


1960년대, 가난한 임실에 온 벨기에 신부

나이 들고 붉은 뿔테 안경을 쓴 벨기에 사람 지정환 신부가 분홍색 한복을 입고 있음

1964년, 벨기에에서 온 지정환 신부가 임실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임실은 일자리가 부족해 젊은이들이 떠나는 가난한 농촌 지역이었습니다. 신부는 한 청년이 “농사지을 땅은 부족하고 온통 풀밖에 없는데 무슨 일을 합니까?”라며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고 깊이 고민했습니다. 지정환 신부는 단순히 종교적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1966년 산양 사육을 시작했죠. 처음엔 산양 두 마리로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였지만, 이것이 바로 한국 치즈 산업의 첫걸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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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 신부는 벨기에 루벵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가톨릭 구호활동을 위해 1960년대 초 한국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첫 사목지가 바로 임실이었습니다.


산양 젖에서 치즈로의 전환

처음에는 산양 젖을 전주의 외국인들에게 판매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판매가 잘 되지 않자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산양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팔지 못한 젖을 버리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바로 이때 지정환 신부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치즈 제작이었습니다. 1967년, 우연히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응고제와 관련 서적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드디어 첫 번째 치즈를 완성했습니다. 이때 만든 것이 바로 모차렐라 치즈였습니다. 1968년에는 프랑스에서 치즈 기술자가 와서 카망베르 치즈 제조를 시도했고, 이 치즈로 농수산물 가공전시회에서 장려상까지 받았습니다.


유럽에서 배운 기술로 체더 치즈 생산

1969년 지정환 신부는 동료들과 함께 유럽으로 가서 본격적인 치즈 제조 기술을 배웠습니다. 이듬해인 1970년 한국으로 돌아와 체더 치즈 생산을 시작했고, 이를 점차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임실치즈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1972년 임실치즈가 조선호텔에 납품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인 대량 생산 체제에 들어갔습니다. 지정환 신부가 직접 남대문 시장에 치즈를 들고 찾아가며 판로를 개척한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임실치즈 협동조합의 설립과 성장

1966년 전 주민을 대상으로 ‘임실산양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산양 사육과 젖 판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1972년에는 산양 중심에서 젖소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임실치즈협동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1981년에는 임실 지역 낙농가들이 신용조합을 결성하고, 임실치즈공장을 지역 주민들의 협동조합인 ‘임실치즈농협’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를 통해 치즈 생산이 더욱 체계화되고 안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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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임실치즈농협은 대한민국 최초의 낙농 관련 협동조합 중 하나로, 이후 전국 각지의 지역 치즈 산업 모델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임실치즈농협

오늘날 임실치즈농협은 약 200명의 낙농업 조합원과 1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습니다. 위생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하여 다양한 치즈 제품과 축산 가공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역 소득 증대와 고용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임실치즈는 우유와 산양유를 사용하여 한국 지형에 맞는 스타터와 렌넷으로 자연치즈와 숙성치즈를 생산합니다. 전북 임실군 임실읍 치즈마을1길 4에 위치한 치즈마을에서는 임실치즈농협과 함께 체험 시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 활성화의 성공 사례

임실치즈는 농촌 지역이 지역 특산품을 활용해 수익을 늘리고 지역을 활성화시킨 성공적인 로컬 비즈니스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는 ‘임실치즈’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임실군에 치즈마을이 조성되었고, 소규모 치즈 가공공장과 체험장들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치즈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지역 전체의 관광 산업과 연계되어 더욱 큰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안정적인 소득원이 되었고,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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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마을에서는 치즈 만들기 체험뿐만 아니라 피자 만들기, 유제품 시식, 낙농장 견학 등 관광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치즈 산업의 원조

임실치즈는 사람들이 치즈 소비 경험이 없던 시절에 국내 치즈 생산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지정환 신부의 도전이 한국 치즈 산업의 시작이 된 것이죠. 치즈를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던 주민들에게 치즈는 낯설고 냄새나는 음식이었지만, 꾸준한 노력과 개선을 통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치즈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외국 문화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게 적응시킨 지역 혁신 사례입니다.


한 신부의 헌신이 만든 기적

임실치즈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외국인 신부의 진심 어린 헌신이 어떻게 한 지역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식문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정환 신부는 단순히 종교적 사명감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자립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세운 실천가였습니다. 1960년대 가난한 농촌에서 시작된 작은 산양 두 마리가 오늘날 200명의 조합원과 1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임실치즈농협으로 성장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한 개인의 헌신과 지역 공동체의 협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임실치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역 특산품의 가치와 가능성을 일깨워줍니다. 작은 아이디어와 꾸준한 노력이 지역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References